그래픽=류지혜 기자 birdy@ 클립아트코리아
전국 생두 95% 이상이 수입되는 부산항을 보유한 부산은 분명 커피도시다. 단순히 많은 양의 생두가 수입된다는 사실만으로는 글로벌 커피도시엔 끼지 못한다.
커피도시라 불리는 미국 뉴욕, 영국 런던, 독일 함부르크 역시 생두 생산지는 아니지만 연간 수십억 달러의 커피 거래가 발생하면서 그 명성을 공고히 하고 있다. 이들 도시도 엄청난 원두를 수입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여기에 생두 가공부터 신뢰할 수 있는 생두 데이터 확보, 커피 고부가가치 생산 등 완전한 커피 생태계를 갖추고 있다.
부산항 배후단지를 거점으로 커피 전 생산 과정을 아우르는 밸류체인, 즉 커피 생태계 구축을 목표로 글로벌 커피도시 도약에 시동을 건 부산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 살펴본다.
■배후부지에 커피 물류·제조 기업 유치
부산항 배후 부지는 그동안 수입·환적 물량이 오고 나가는 장치장 역할에 그쳤다. 각국이 항만 배후단지 기능이 물류에 더해 제조 중심으로 거점화되면서 국제 무역의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이 점차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커피 산업의 특성과도 맞아떨어진다. 커피는 저장, 가공, 물류, 유통이 연계돼야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이에 발맞춰 부산은 최대 생두 수입 항만이라는 부산항의 이점을 살려, 배후단지를 커피 생산부터 최종 수출까지 전 과정을 아우르는 커피 거점 플랫폼으로 조성하고 있다.
다수 기관이 부산항 배후단지에 커피 산업 관련 기업을 모으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부산항만공사(BPA)는 내년 부산항 신항 남컨배후단지(약 84만㎡)의 준공이 마무리되는 대로 부지 공고를 진행할 예정이다.
투자 유치를 맡은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이하 경자청)은 아예 ‘생두’를 전략산업으로 지정했다. 부산항 일대에 커피 제조·물류 기업을 불러모으기 위해서다. 실제 경자청은 지난달 ‘BJFEZ 전략품목 신규사업화 컨설팅 지원사업’ 참여기업 6개 사를 선정했다. 경자청은 부산항 배후단지와 연계한 선정 기업들의 신규 사업 아이디어를 구체화할 수 있도록 컨설팅 지원에도 나선다.
BPA도 배후단지에 고부가가치 산업을 유치하기 위해 부산시, 경자청 등과 협력하고 있다. 부산항만공사 물류정책실 관계자는 “남컨 배후단지에서 제조업이 들어올 수 있는 부지는 현재 매우 적은 상황”이라면서도 “부산에 도움이 되는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부지의 30%가량을 제조 부지로 전환할 수 있는 방안 등이 있다. 부지 임대에 앞서 기업들의 부지 수요나 해당 기업들의 비즈니스 모델이 얼마나 사업성이 있는지 등을 관계 기관들과 함께 공유하고, 향후 부지 임대에 참고할 계획이다”고 전했다.
커피 산업 집적화가 추진되는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 내 배후단지. 커피 분석 장비를 설명하는 ‘부산 커피 R&D 랩’ 관계자. 지난달 도모헌에서 열린 ‘부산은 커피데이’(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부산일보DB·부산시 제공
■데이터 기반의 커피 혁신 기술
부산은 타 시도가 하지 않는 혁신적인 커피 관련 기술 개발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대표 사례가 지난해 ‘부산 커피 R&D 랩’(이하 부산 커피 랩)이 부산 영도구 봉래동에 문을 연 복합문화공간 ‘끄티 봉래’다. 부산 커피 랩 탄생에는 정부도 힘을 보탰는데,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블록체인 기반 스마트 물류 기술 사업화 협업 플랫폼 구축 사업’을 통해 지원하고 있다.
부산 커피 랩은 ‘기술혁신 개방형 공유 랩’을 목표로 커피 추출에 최적화된 수질을 맞출 수 있는 장비를 비롯해 커피 추출과 분석에 관련된 25종 27개 최신 장비를 갖추고 있다. 과기부 블록체인 플랫폼 구축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기업 2곳도 부산 커피 랩 설립을 계기로 본사를 옮기거나 자회사를 설립했다. 생두 데이터 분석 스타트업 에그스톤은 끄티 봉래에 지난해 자회사를 냈다.
또 과기부 지원으로 ‘생두 가치 평가 플랫폼’도 최근 구축이 완료됐다. 생두 샘플을 NIR(근적외선분광분석기)로 분석하면 로스팅된 이후의 원두 맛을 예측할 수 있다. 이러한 데이터는 블록체인에 저장되고, 실제로 원두로 가공해 맛을 보지 않더라도 데이터를 통해 완성품의 맛을 알 수 있다. 과기부 사업을 진행하는 부산테크노파크 관계자는 “생두에 대한 객관적 데이터를 전 세계와 함께 공유할 수 있다”며 “부산이 정보 신뢰도를 기반으로 세계적인 커피 경매 시장에도 뛰어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부산판 커피 탄생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수준의 부산 커피 브랜드도 머지않아 나올 예정이다. 부산 커피 브랜드 구축에 참여한 인물과 기업 면면도 화려하다. 부산시 요청에 2019 월드바리스타챔피언 전주연, 2021 월드컵테이스터스챔피언 추경하, 2022 월드컵테이스터스챔피언 문헌관 등 월드커피챔피언 3인이 참여했다. 부산경남우유협동조합, (주)비지에프(BGF)리테일, (주)지에스(GS)리테일도 함께했다.
그 결과 ‘부산형 커피 음료’(RTD)가 세상에 나왔다. RTD는 ‘레디 투 드링크’(Ready To Drink)의 약자로 바로 마실 수 있는 캔, 병과 같은 제품을 말한다. 이 커피는 지난달 20~21일 도모헌에서 열린 ‘부산은 커피데이’에서 처음 선보였다. 해당 제품 명칭은 시민 아이디어로 정할 예정이다.
시민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한 행사도 마련된다. 올해 12월 3일부터 나흘간 부산 벡스코에서 ‘2025 부산 커피 어워즈 & 페스티벌’이 열린다. 행사에서 시민들은 커피 전문가들로부터 로스터와 브루잉 등을 배울 수 있고, 스페셜티를 마셔볼 수도 있다. 로컬로스터와 홈브루어 등 소규모 커피 브랜드 또는 업체 운영자들이 각 사 커피를 선보이는 네트워크 공간도 마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