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포커스] 前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악장 이명일, “되돌아 보면 드라마같은 연주인생이었다”  © 더뉴스코리아

[더뉴스코리아=김두용 기자] 대한민국 최고의 가야금 명장 이명일 씨를 만나 그의 연주인생에 대해 들어봤다.

 

이명일 씨는 어릴적 국악에 대한 인식이 보수적이었던 시대에도 민요는 동요와 같이 친숙했다고 한다.

 

76년 고교때 특활부로 가야금을 선택했던 것이 내 삶의 모두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했고, 되돌아 보면 드라마같은 연주인생이었다고 회고하면서 어릴때만 하더라도 기방문화로 인식되어 편견이 심했다고 한다.

 

이명일 씨는 어릴적 부모님의 극심한 반대로 가야금을 사주지 않아 몰래 나무판에 12개의 못을 박아 고무줄을 얹어 연습할 정도로 꺾지 않았고, 그렇게 힘들게 국악인으로서의 삶이 시작 되었다고 한다.

 

이 씨는 현재의 본인이 있는데에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한다. 이 씨는 “나를 소개할 때면 언제나 ‘1회’, ‘최초’라는 말이 뒤따른다. 국악인으로서 그것은 내게 운명이었고, 국악에 대한 인식 전환기의 어려운 시절을 견뎌온 선물이라 여긴다”고 말하며, “‘처음’이라는 수식어는 그만큼 고된 시간을 거쳐왔다는 말과 다름없다. 물론 나만의 유아독존의 결과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내게 길을 열어준 강태홍류 가야금산조 고(故)김춘지 선생 문하생으로 처음 입문하였고, 1979년 선생님의 부산 지방인간문화재 지정을 받을 당시 조교로 선생님을 도왔다. 악보가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절, 구전심수(口傳心授)로 가락을 배웠고 8개월여 동안 손톱이 빠질 정도로 콩쿨곡 가락을 익혀 첫 공식 공연무대에 올랐고, 후배 학생들을 지도하여 서울KBS 전국대회 콩쿨 입상을 했던 것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하면서, “그런데도 언제나 가슴 한 켠에는 국악이론과 실기의 한계를 느꼈다. 주경야독으로 입시준비를 하던 중에 전국 6개 국립대학에 국악학과 개설 소식을 듣게 되었고, 부산대학교 예술대학 국악학과 1회 차석 합격의 영광과, 1986년 예술대 전체 수석졸업 수상은 이후에 내게 활발한 음악활동을 하는 힘이 되었다. 대학원을 다닐 때는 여러 대학출강 등 다양한 혜택도 누렸다”고 말했다.

 

또한 “1986년 신인음악회를 시작으로 1991년 부산시립국악단 입단과 동시에, 후학 양성과 여러 장르의 가야금 연주 지평을 새롭게 여는 공연을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내게 든든한 뒷배경이 되어 주신 세 분의 스승을 이제나마 추모한다. 두 분은 인간문화재이셨고, 다른 한 분은 가야금의 경지인 신의 손, 귀곡성 소리를 내는 분이셨다”고 말하며, “천 번을 타면 재주가 있다 들을 것이고, 만 번을 타면 득음(得音)할 것이라던 세 분의 스승은 한(恨)의 소리를 간직한 채 영원한 천상의 소리여행을 떠나셨고, 이후 난 새로운 음악의 길을 찾아 나섰다”며 스승에 대한 존경심을 나타냈다.

 

이 씨는 가야금의 변천시대를 살아온 세대로 12현금이 13현, 17현, 18현, 21현, 22현, 25현 개량금의 변천 과정을 지나 주법(奏法)의 다양화로 장르별 악단창단을 이어왔다.

 

수많은 공연 중 2008년 고신대 교회음악과 설립 30주년기념 ‘한국전통음악’으로 태어난 “헨델의 메시야” 전곡 세계초연, 2005년 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식 “100대의 가야금” 공연이 특히 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이명일 씨는 본인의 음악 사상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나의 음악사상은 우륵(于勒) 선생의 영향을 받았음에도 정년을 앞둔 시점에서야 고령 우륵박물관을 방문했었다. 즐거우나 도를 지나치지 않고 슬퍼도 비통하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절제를 잊지 말라는 “낙이불류 애이불비(樂而不流 哀而不悲)”는 평생의 삶의 바탕이었다”

 

이 씨는 예술단원을 시작으로 부산시립국악단 창단 이래 최초 여성악장으로 임명받아 근무하였고, 2020년에는 시립 가야금인생 30년, 처음 숨어서 못줄 가야금 연습을 시작했던 때로부터 45년의 삶을 마무리하는 귀한 선물인 정년퇴임을 하게 되었다.

 

이 씨는 “수 천 번의 공연을 모두 헤아리기 어렵지만, 이제는 ‘들어줄 사람을 기다리듯 들려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춤추는 가얏고’의 명대사처럼, 고인이 되신 세 분 스승의 경지를 담아내지는 못해도 영혼의 울림을 주는 가얏고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밝혔다.

 

이어 “퇴직의 때로부터 세웠던 계획, ‘세 번째 서른 살의 새로운 시작!’ 남은 생애에서 무모한 계획일지도 모를 ‘100회의 연주회’를 추진하며 한 회씩 차곡차곡 남겨진 현향신화(絃香神話)를 꿈꾼다”고 말하면서 남은 인생도 연주인생으로 어쩌면 무모할지 모르지만 누구보다 아름다운 꿈을 갖고 산다.

 

▲ [인물포커스] 前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악장 이명일, “되돌아 보면 드라마같은 연주인생이었다”  © 더뉴스코리아

 

▢ 공식 공연: 1,800여회 공연

 

<주요 공연>

 

1991년 후쿠오카&부산자매도시 교류공연

1994년 이명일 가야금 첫 독주회

2000년 새천년 해운대 해맞이 공연

2000년 북경&부산 교류음악회

1986년 2002년 아시안게임 폐막식 공연

2004년 MBC 오케스트라 한·일 빅 콘서트

2005년 APEC 정상회담 개막축하 연주

2001년/2008년/2009년 환경생태 음악회 협연

2013년 한·독수교 130주년 및 파독 50주년 기념 함부르크&뒤셀도르프 초청공연

2016년 서울문화재청 해외문화재 “Digital 귀향전” 연주  

2017년 한·중 수교 25주년 신년하례회 축하연주

2019년 뉴질랜드 한인회 초청연주

2019년 한·중·일 교류 동아시아 문화의 숲 음악회 협연

2020년 “아악의 밤” 정년 퇴임음악회  

2021년 은퇴 후 첫 독주회 1/100

2022년 2회 독주회 2/100 등

 

<재능기부>

 

기독 신우회, G&G컨퍼런스(중남미·일본·중국·러시아·태국·인도네시아), 부활절연합예배, 성시화 대회(인도·태국·일본), 교도소, 박애원, 복지관, 경찰서, 외국인근로자세계크리스마스 축제, 행복콘서트, 노인·소년소녀가장돕기 재능기부

 

<주요 창단공연>

 

∘1992년 김병호류 가야금산조보존회 창단

∘2005년 부산가야금합주단 창단연주

∘2012년 부산극동방송퓨전앙상블

∘2014년 부산CTS 퓨전앙상블

∘2015년 부산 퓨전앙상블  

 

▢ 프로필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악장역임

∘부산대학교. 신라대학교. 외래교수역임

∘부산가야금합주단 부단장역임

∘현 퓨전앙상블 동인

∘부산시장상 2회

∘1986년 부산대총장 모범상

∘1984년 부산대총장 논문상

∘2017년 순국선열의 날 봉사상